1978년 ‘이스트 미트 웨스트’ 패션쇼 직후 뉴욕의 스튜디오 54에서 열린 애프터 파티에 참석한 이세이 미야케. / WWD
1978년 ‘이스트 미트 웨스트’ 패션쇼 직후 뉴욕의 스튜디오 54에서 열린 애프터 파티에 참석한 이세이 미야케. / WWD

새로운 개념의 패브릭과 베스트셀러 향수로 이름을 날렸던 일본 패션계의 이단아, 이세이 미야케. 지난 8월 5일 그가 84세의 나이로 도쿄 병원에서 사망했다.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와 이세이 미야케 그룹의 발표에 의하면 사망 원인은 간암의 일종인 간세포암이다. 그는 친한 친구와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채 죽음을 맞았으며 생전 뜻에 따라 장례식이나 추모식은 진행하지 않았다. 

미야케는 1970년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후 다채롭고 실용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의류를 디자인해왔다. 그는 파리 패션쇼에 참가한 최초의 일본 디자이너에 속했고 1970년대에 섬나라 일본을 세계적인 패션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의류 라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코디언처럼 주름진 원단이 특징인 플리츠 플리즈. 최근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 부쩍 인기가 높아진 이 라인의 남성복이 바로‘옴므 플리세 이세이 미야케’다.

1998년에는 또 다른 실험적 라인인 어 피스 오브 클로스(A Piece of Cloth, A-POC)를 발표했다. A-POC은 동시대적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끊임없는 탐구의 상징과도 같다. 그가 기획한 최초의 A-POC은 하나의 원통형 저지원단을 착용자가 직접 잘라서 입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패션의 혁신가는 디자인이라는 창작 과정의 최전방에서 점차 물러났다. 그는 개인적인 창의력과 탐구뿐만 아니라 팀워크에도 초점을 두었고 이는 차세대 인재 육성으로 이어졌다. 그의 후계자들은 춤과 퍼포먼스로 파리 패션 위크 쇼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디자인 정신을 이어가고있다. 미야케 그룹은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미야케는 트렌드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역동적인 정신은 끊임없는 호기심,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기쁨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원동력으로 움직었다. 선구자로서 늘 전통 공예를 포용하는 동시에 끊임없는 연구 개발을 통해 최신 기술을 탐구했고 창조의 과정 자체를 사랑했기에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의 모든 컬렉션을 지휘하며 늘 팀과 함께했다. 기쁨과 용기,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정신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1938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미야케는 도쿄의 타마 예술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1965년 파리로 향했다. 파리 의상조합학교를 다니며 기라로슈와 위베르드 지방시의 견습생으로 경험을 쌓은 그는 2007년 <WWD>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트 쿠튀르를 익히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오트 쿠튀르는 이미 모든 것이 완성돼 있었죠. 그 이상, 그 너머를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지만 유럽 패션과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해내야만 했죠.” 그는 뉴욕 7번가에서 제프리 빈과 잠시 일하다가 1970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귀국한 직후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을 오마주한 타투드레스를 선보이며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에서 그의 의상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84년 뉴욕의 포시즌스 호텔 앞에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오스카 드 라 렌타와 함께한 이세이 미야케. / WWD
1984년 뉴욕의 포시즌스 호텔 앞에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오스카 드 라 렌타와 함께한 이세이 미야케. / WWD

이때부터 미야케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3년에는 이미 울과 실크 같은 뻔한 원단 대신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했고 1988년부터는 주름 원단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관리하기 쉽고 세탁이 가능한 원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공장이 도쿄에 있었기에 수시로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엇이 더 필요한지 확인하기가 수월했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플리츠 플리즈 컬렉션이다. 1993년 론칭 직후 플리츠 플리즈는 성공적인 컬렉션으로 자리 잡았으며 단순한 형태와 독창적인 프린트, 여행에 적합한 실용적 특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의 혁신적인 시도가 매번 즉각적인 호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A-POC 프로젝트에 관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기까지 7~8년이 걸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야케의 작업실은 지역 장인이나 기업과 협업하고 새로운 소재와 기술을 실험하는 디자인 스태프로 늘 분주했다. 이러한 과정과 시간은 독창적인 재료와 혁신적 기술, 독특한 방법론의 탄생으로 이어지곤 했다. 미야케의 디자인 철학에 의하면 그의 의상은 몸을 둘러싼 ‘한 조각의 옷감’이며 한 조각의 옷감은 ‘옷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과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을 연구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확장한다고 믿었다. 

이세이 미야케의 파리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1975년 봄/여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 / WWD
이세이 미야케의 파리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1975년 봄/여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 / WWD

전시회를 열고 관리하는 것 또한 미야케에게 중요한 활동이었다. 1998년 파리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첫선을 보이고 이듬해 뉴욕의 에이스 갤러리에서 진행한 전시 <만들기(Making Things)>는 미야케가 디자인에서 기술적인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옷을 만드는 것이 원단에 스케치를 하고 자르고 바느질을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방법이지만 뻔한 방식이죠. 나는 옷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 전시에는 유명한 주름 의상 외에도 가위와 실, 바늘을 사용하지 않고 나일론 원단 한 장으로 만든 드레이프 드레스도 등장했다.

오랜 경력 동안 미야케는 여러 개의 브랜드와 컬렉션을 출시했고 1990년대 후반에는 파이널 홈(Final Home), 츠모리 치사토(Tsumori Chisato) 같은 젊은 디자이너를 후원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1976년 이세이 미야케 여성복 라인의 일부로 시작한 이세이 미야케 맨은 1978년에 단독 브랜드로 분리되었지만 2020년 가을 컬렉션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반면 2013년에 론칭한 플리츠 플리즈의 남성복 라인 옴므 플리세 이세이 미야케는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에는 도쿄 아오야마 매장에서 아임 맨(IM Men)이라는 새로운 남성용 브랜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종이처럼 납작하지만 입으면 입체적으로 바뀌는 132 5 이세이 미야케, 체형에 상관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프리 사이즈 콘셉트의 이세이 미야케 미(Issey Miyake Me), 1998년에 탄생한 실험적 라인의 최신 버전 A-POC 에이블(A-POC Able) 등이 이세이 미야케 컬렉션에 포함된다.

1980년 가을/겨울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과 이세이 미야케. / WWD
1980년 가을/겨울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과 이세이 미야케. / WWD

스티브 잡스가 미야케 남성복의 팬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애플의 공동창립자는 평생 검은 터틀넥만 입었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 실제로 그는 미야케가 만
든 옷을 사랑했고 엄청난 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그도프 굿맨과 니만 마커스 백화점의 남성복 디렉터 브루스 패스크는 옴므 플리세 라인과 관련해 미야케를 체형의 다양성을 수용한 패션의 선구자라고 표현했다. 패스크는 옴므 플리세 옷이 모든 연령대의 남자들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한다. “원단의 내구성과 실용성뿐 아니라 폭넓고 다양한 형태와 색상, 프린트가 주된 인기 비결입니다. 아코디언 주름 의상은 다른 어떤 로고보다 확실한 시그너처 역할을 하죠.” 

1980년 가을/겨울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과 이세이 미야케. / WWD
1980년 가을/겨울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과 이세이 미야케. / WWD

1973년 4월 미야케는 처음으로 파리에서 여성 컬렉션을 선보이며 파리 패션 위크에서 패션쇼를 연 최초의 외국인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 후 프랑스 패션협회 회원이 됐고 이사회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파리 패션 위크의 협회장 부뤼노 파블로브스키는 미야케를 “문화를 융합할 줄 알았고 늘 헌신적으로 파리 패션 위크의 영향력에 기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협회 위원장인 파스칼 모랑 또한 “전통 방식의 노하우와 새로운 기술을 합치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엄청한 혁신가”라고 덧붙였다. 미야케는 패션계 인권에 있어서도 선구적 역할을 했다. 가수 그레이스 존스는 공연용 의상으로 이세이 미야케 옷을 즐겨 입곤 했는데, 1976년 도쿄에서 열린 패션쇼 ‘이세이 미야케와 12인의 흑인 여자들’에 존스와 최초의 흑인 모델 중 한 명인 베단 하디슨 등을 세우기도 했다.

아티스트 차이 구어 치앙(Cai Guo Qiang)과 협업한 의상을 입은 모델. / WWD
아티스트 차이 구어 치앙(Cai Guo Qiang)과 협업한 의상을 입은 모델. / WWD

특유의 혁신적인 접근은 의류 외에도 여러 카테고리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메시 소재에 삼각형의 비닐 패치를 겹쳐 만든 모듈식 가방 바오 바오도 그중 하나. 바오 바오는 2000년에 출시해 2010년 가을 시즌부터 단독 액세서리 브랜드 바오 바오 이세이미야케로 자리 잡았다. 미야케의 도전 정신은 향수 분야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91년 시세이도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그는 시세이도가 설립한 파리 자회사 뷰티 프레스티지 인터내셔널(Beauté Prestige International, BPI)의 첫 향수이자 자신의 첫 여성 향수인 로디세이를 이듬해 론칭 했다. 미야케는 자신과 BPI의 첫 향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향수를 생각할 때 처음 떠오른 것이 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디세이(L’Eau d’Issey)’라고 부르기로 했죠. 물론 <오디세이>를 염두에 둔 말장난이기도 했고요.” 무색의 향수가 담긴 원뿔 모양의 유리병 또한 향수병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다. BPI의 CEO를 역임하고 미야케의 향수 사업을 함께 성장시킨 샹탈 루스에 의하면 당시 미야케는 향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향수도, 향기도 좋아하지 않아요. 여성의 몸 위를 흐르는 깨끗한 물을 좋아할 뿐이죠.” 그녀는 미야케가 사업적 시도에 열린 편이었지만 자신만의 엄격한 비전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예를 들어 광고 캠페인을 찍는다면 사진작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어빙 펜이어야 했어요.” 미야케는 카탈로그, 포스터, 광고 캠페인 등 다수의 비주얼 작업을 펜과 함께 했고 협업으로 탄생한 이미지를 두 권의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디자이너가 향수를 론칭하는 것은 흔한 일 이지만 미야케의 첫 번째 향수가 이룬 성공은 놀라웠다. 로디세이는 1993년 세계향수협회가 주관하는 FiFi 어워즈에서 유럽 지역 최우수 여성 향수상을 타는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미야케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이제 패션보다 향수로 나를 알아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로디세이는 미야케가 출시한 남자 향수 ‘로디세이 뿌르 옴므’에 이어 ‘드롭 디세이,’ ‘퓨전 디세이’ 등 뒤이어 출시한 여러 향수에 영감이 되었다.

1983년 패션쇼 피날레의 이세이 미야케. / WWD
1983년 패션쇼 피날레의 이세이 미야케. / WWD

“미야케를 생각할 때면 순수한 창조, 비전, 진정성, 겸손, 존중과 팀워크가 떠오릅니다.” BPI 최고 브랜드 책임자를 지냈고 현재 기브 백 뷰티(Give Back Beauty)의 CEO인 나탈리 헬로인-카멜은 그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미야케는 상업성보다 늘 창의성을 중시했어요. 그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었죠. 그의 사전에 타협이란 없었습니다.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상업적인 기회를 놓친 적도 있지만 결코 자신의 영혼을 잃지 않았고 패션과 향수 두 분야에서 유일무이한 위치를 점했습니다. 그는 예술가였어요. 그의 향수 파트너로서 시장의 기대치와 룰에 맞출 수 없어 인내심을 잃고 좌절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몇 년 뒤에는 결국 그가 옳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BPI의 전 CEO이자 컨설턴트 회사 EH4B의 대표인 에릭 헨리는 미야케를 진정한 비전을 가진 크리에이터로 기억한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작업에 혁신을 주입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였을 뿐 아니라 놀라운 발명가였죠.” 헨리는 18년 동안 전 세계에 이세이미야케의 향수 사업을 구축하는 것을 도왔다. “그는 늘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동료 디자이너와 역사학자, 리테일러도 미야케가 패션계에서 이룬 유산을 인정한다. “미야케라는 인물과 그가 패션계에 기여한 바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주름을 활용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비롯해 재능의 끝을 알 수 없었으니까요. 수십 년간 이어져온 그의 팬덤이 바로 증거입니다.” 디자이너 잔드라 로즈는 미야케가 전통 다도를 가르쳐주고 세이부 백화점의 임원을 소개해줘 사업 초기에 큰 힘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도쿄에 갔을 때 그가 아름다운 꽃다발을 보내줬어요. 그 꽃에서 영감을 얻어 ‘백합 꽃밭(Field of Lilies)’이라는 프린트를 디자인했죠. 내가 아주 아끼는 프린트 중 하나입니다. 미야케는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가끔 그의 따뜻하고 진심 어린 오라를 떠올리곤 합니다.” 프랑스 기성복 산업의 선구자이자 프랑스 이사회의 수장을 역임한 디디에 그륑바슈 (Didier Grumbach)는 미야케가 요지 야마모토와 레이 가와쿠보가 오기 훨씬 전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부터 환호와 관심 그리고 존경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야케는 일본인 아티스트와 협업해 만든 재킷을 그륑바슈에게 선물한 적이 있는데 그는 지금도 그 옷의 디자인에 놀라움을 표한다. “박물관에 전시할 만한 작품입니다.”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케인은 미야케를 패션 디자이너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 “그는 과학자, 건축가였습니다. 미야케의 옷은 패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발명과 진화의 정점이죠. 내 눈에는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천재적인 창착물처럼 보입니다.” 셀프리지 백화점의 바잉 & 머천다이징 총괄 디렉터 서배스천 메인스는 미야케의 영향을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디자인은 착용했을 때 신체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창의성을 결합한 결과물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는 변치 않죠.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미야케의 잠재력을 일찍이 알아챈 이로 마사 인코퍼레이션의 마사 필립스도 빼놓을 수 없다. 폴린 트리제와 발렌티노, 빌 블라스 등 재능있는 디자이너를 발굴한 것으로 유명한 리테일러계의 거물. 필립스의 손자이자 다섯 개 매장의 바잉과 운영을 담당한 앤드루 번스타인은 1970년대 초 미야케의 컬렉션을 처음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팜비치 매장에 옷이 도착했을 때 할머니가 모델에게 옷을 입혀보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도대체 어떤 소재로 만든 옷인지 모르겠지만 여자 몸에 이토록 정확하게 잘 맞는 건 본 적이 없어’라고 하셨죠.” 필립스는 즉시 미야케에게 전화해서 플로리다 지역의 두 매장에서 패션쇼를 열자고 제안했다. 2012년 디자이너와 함께 <플리츠 플리즈:이세이 미야케>를 공동 집필한 패션 역사학자 올리비에 사이야르는 그가 패션보다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을 추구했다고 전했다. 미야케는 자신의 옷이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댄서의 움직임에도 적합하기를 원했으며 민주적이면서도 보편적이기를 바랐다. 사이야르가 평가하는 미야케는 “위대한 이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당시 일본 사회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도 불구하고(미야케는 1945년 원자폭탄 투하의 생존자였다) 도쿄 21_21 디자인 사이트 박물관을 설립하는 등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사람들과 인간의 모습에 관심이 깊었습니다. 신체와 옷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패션과 예술, 기술의 경계를 넓혔죠.” 팔레 갈리에라 의상박물관의 디렉터 미렌 아르살루스는 그의 디자인이 패션사에서 진정한 이정표이며 전 세계 사람들이 움직이고 느끼고 사는 방식을 변화시켰다고 강조했다. 40년 이상 그와 우정을 나눈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 자크 랑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야케의 부고에 슬픔을 표했다. “그는 특별했습니다. 그의 옷을 입는 사람이 특별한 기분을 느끼도록 해줬죠. 미야케의 옷을 입고 고양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행운이었습니다. 숭고한 디자인을 가까이서 접하며 자랑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이세이는 신성한 보물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도저히 슬픔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1985년 가을/겨울. 1984년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 / WWD
1985년 가을/겨울. 1984년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 / WWD
1983년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 / WWD
1983년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 / WWD
1999년 뉴욕 에이스 갤러리에 전시된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플리즈 의상. / WWD
1999년 뉴욕 에이스 갤러리에 전시된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플리즈 의상. / WWD

 

1999년 뉴욕 에이스 갤러리에 전시된 A-POC 의상. 이어진 한 장의 원단으로 여러 벌의 니트 자카르 드레스를 만들었다. / WWD
1999년 뉴욕 에이스 갤러리에 전시된 A-POC 의상. 이어진 한 장의 원단으로 여러 벌의 니트 자카르 드레스를 만들었다. / W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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