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용배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대표
사진//전용배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대표

 

몇 년 전 잊지 못할 도보 여행을 했다. 미국 동료의 초대로 다양한 국적의 트레킹 멤버들과 함께 몽골 서부 알타이 고원과 만년설을 9박 10일 동안 트레킹하는 코스였다. 미국, 인도, 호주, 영국 등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CEO 등 10명이 참여했다. 우리는 울란바타르에서 만나 첫인사를 나누고 자신들이 하는 일을 포함해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잠시도 비즈니스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열흘 동안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오지를 트레킹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같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찾기를 열망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 또한 급변하는 금융시장과 매일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사색의 시간을 통해 또 다른 도약을 희망했기에 이 여정에 동행했다.


우리는 울란바타르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몽골 서부 을기 (Ulgi)로 이동했다. 몽골은 면적으로 세계 18위 한반도의 4배에 해당할 정도로 넓은 나라다. 을기에서 바로 짚차를 타고 이정표도 길도 없는 평원을 따라 서쪽으로 5시간가량 이동했다. 수많은 별과 은하수가 펼쳐진 밤하늘은 보며 게르에서 첫 밤을 보냈다. 다음날 드디어 우리들의 도보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원을 누군가 밟고 지나간 좁은 오솔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말을 타기도 하며 이동했다. 처음에는 온갖 생각들로 내 머릿속이 채워졌다. 오늘 주식시장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달에 출시한 펀드에 자금은 얼마나 들어왔을까, 올해 주어진 운용자산 증가 목표 달성이 가능할까 등등 내가 사무실에서 걱정할 것들이 수천 킬로 이동해서도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떨쳐낼 수도 없었다.


우리 일행 중에 한 명만이 위성 통신이 가능한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난 그 휴대폰을 빌려 쓰고 싶은 충동이 있었으나 급한 용무도 아니고 해서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희한하게도 누구도 그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진정한 휴식과 격리의 의미를 깨달았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가고 한국은 아무 일 없으며 다음날 해는 뜨고 지고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참 오랜 시간이 결렸다. 어느 책 표지에 이런 글이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할 수 있다’는 응원이 아니라 자신감과 용기를 회복시켜줄 휴식이 필요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휴식임을 깨달았다.


우리들의 트레킹 최종 목적지는 몽골의 제일 서쪽이며 중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및 몽골 4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해발4000m 높이의 알타이 산맥 5개의 만년설 봉우리와 빙하가 있는 ‘타왕복드’이다. 매일 10시간씩 걷거나 말을 타고 이동하고 저녁에는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임시 식탁과 화장실을 사용하는 등 원시적이며 최소한의 시설로 생존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낮에 이동하는 동안에는 혼자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저녁에는 희미한 랜턴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 아래에서 트레킹 멤버들과 인생을 논하고 살아온 경험과 삶의 가치 등을 나누기도 했다. 종교와 신념, 취미, 음식, 기호, 음악, 여행 경험 등 댜양한 주제로 얘기를 나누며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옛말에 삼인행 필유아사 (三人行 必有我師) 즉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갈 때 반드시 가르침을 줄 스승이 있다고 했던 말을 실감했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와 히말리아 안나푸르나를 등반한 동료는 다음 해 알프스 돌로미테 트레킹을 계획한다고 한다. 그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생활함에도 삶의 우선순위를 여유와 휴식에 두고 있음을 알았다. 짜릿한 위스키 한 모금에 세상의 희로애락을 제쳐두고 그냥 은하수 아래에 자연과 하나가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인도에서 해운회사를 경영하는 분은 항상 요가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를 따라 요가를 체험하고 명상하는 방법도 배웠다. 아주 간단한 호흡 명상법으로 먼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숨의 흐름을 느껴보고 방해가 되는 생각이나 소음이 의식되면 그저 단순하게 받아들인다. 생각에 사로잡히기보다는 거듭 호흡을 주목하도록 한다. 집중을 잘하든 못 하든 상관없다! 무슨 기대나 야심 찬 목표로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자. 당장 뭐가 이루어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음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만으로도 우리의 시각은 바뀔 수 있다. 일, 가족, 돈, 기대 등 끊임없이 나를 지배하는 외부 자극에서 잠깐 떨어져 나오면 하루하루가 더욱 새롭고 소중해지는 것이다. 이 호흡 명상법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가르침이다. 난 여태껏 뭔가를 이뤄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싸여 있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지만, 그 여유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몽골 대평원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과 푸른 초원, 힘든 고개를 넘어가면 펼쳐지는 에메랄드 빙하 호수, 그 너머 높이 보이는 만년설의 산맥, 그 아래 흐르는 회색빛의 포타닌 빙하, 옥빛의 생명의 물줄기 등 험준하지만 때 묻지 않은 몽골의 대자연은 장관이기에 충분했다.
양과 말 떼를 기르며 계절에 따라 풀과 물을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과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 태양열 전기로 위성 TV와 전화를 갖춘 전통 가옥인 게르와 몽골식 요리인 염소 고기 국수, 말젖 우유 등 순수한 유목민의 삶에서 진정한 여유를 찾았다. 그들의 전통을 따라 돌탑 (어워)을 돌며 땅 신과 하늘신에게 안전한 여행을 빌었다. 행복이란 많이 가져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펼쳐진 작은 것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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